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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윅

보다 2010/01/19 13:24


헤드윅

2010. 1. 17 pm3
cast 최재웅, 최우리


여기, 성전환 수술에 실패한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헤드윅. 성전환 수술의 실패로 다리 사이에 1인치의 살덩이가 남아버린 그(그녀)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경계에 서있는 사람이다. 철저한 경계인, 배척받는 경계인으로서 그 고통에 몸부림치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 내가 오늘 보고온 헤드윅은 그런 이야기였다.


재웅씨의 헤드윅은 '그녀'라고 지칭하기에는 다소 모호한 인물이었다. 여성스러운 말투, 목소리를 내고는 있었지만 그건 머리에 쓴 가발, 입고 있는 치마에 어울리는 '가장' 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여자인 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데 여성으로 차린 그 외모에 현혹된지라 그러한 느낌이 초반에는 좀 헷갈렸지만 극을 보면서 결국 Tear me down에서 얘기한 대로 헤드윅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 경계 위에 서있는 이라는 생각을 했다. 헤드윅, 아니 한셀은 사실 게이이거나 혹은 바이일 수는 있으나 트랜스젠더가 되고 싶어하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단지 동독의 상황에 억눌리고 있던 그는 자유를 찾아 떠나기를 원했고 첫사랑이 달콤하게 건낸 유혹의 말,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를 포기하라는 말을 충실히 따랐을 뿐. 그는 굳이 여자가 될 이유를 갖지 못했던 것 처럼, 절박하게 남성성을 지켜야 할 이유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본다면 한셀은, 애초에 타고나길 성적인 경계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신만이 홀로 경계인일 때야 육체에 따라 얼마든지 그 모양에 맞추어 살아갈 수 있다. 남성으로 계속 살았다면 남성으로 별 무리 없이 살았을 것이다. 또 성전환 수술에 성공해 완전한 여성이 되었다면 한셀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잡을 데 하나 없는 여성으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습게도 1인치의 살덩이와 함께 육신은 정신과 마찬가지로 뚜렷한 경계인의 모양새를 갖추고야 말았다. 정신만 경계인일 때야 어느 무리 속에도 섞여 살 수 있었지만, 육신이 경계인이 되버리고 나니, 어느 영역에도 속하지 못하고 밀려나고 배척당해 헤드윅은 결국 경계 위에 철저히 버려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로 인한 분노로 들끓는 존재, 그게 바로 오늘의 헤드윅이었다.


그가 이츠학에게 가혹하리만큼 냉담하게 굴고 그의 여성성을 조롱하는 것도 결국 이 때문인지 모른다. 드래퀸인 이츠학은 몸은 비록 남성이나 정신은 완전히 여자. 그가 성전환 수술을 하여 여성의 몸을 갖게 된다면 아름다운 여성으로 활개를 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경계인인 헤드윅으로서는 여성의 정신을 가진 그를 남성의 육신 속에 붙잡아 놓음으로써 저와 같은 경계에 머물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야만, 제가 경계 위에서 철저히 혼자라는 고독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 테니. 소속없이 떠도는 떠돌이의 혹독한 외로움. 그에 비롯되는 폭력성. 늘 억압받다가 어쩌다 얻게 된 작은 권력을 이츠학을 향하 마구 휘두르는 헤드윅의 모습은 그래서 처연했다. 헤드윅을 분노하고 잔인하게 만든 까닭은 결국 외로움에 있었다. the origin of love에서 사랑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반쪽이었던 이를 애타게 찾아 헤메는 것도 결국 그 때문. 남성과 여성이라는 소속을 얻을 수 없는 경계인으로서 헤드윅은, 대신 자신의 반쪽, 어떤 모습이어도 원래 한 몸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알아봐줄 그 반쪽을 찾아 한 몸이 되어 소속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분명 그런 반쪽이라 여겼던 토미는 1인치의 살덩이에 겁을 집어먹고 도망쳤다. 헤드윅은 분노한다. 나를 진정 사랑했다면 내 '이것'도 함께 사랑해줬어야지. 그러나 그 토로에서 내가 읽었던 것은, 네가 사랑해줬다면 나도 비로소 내 '이것'을 사랑할 수 있었을 텐데, 였다.


헤드윅은 저를 배척한 세상에게 분노를 토해낸다. 저를 이용하고 버린 첫사랑, 등을 돌린 토미, 배척하는 세상, 떠나고 싶어하는 이츠학. 끔찍한 외로움 속에서 몸을 떨며 저를 그렇게 외롭게 만든 세상에 대한 분노로 날 뛴다. 그러나, 정말 저를 외롭게 하는 이가 누구인가? 첫사랑? 토미? 이츠학? 아니다. 그 자신, 경계인으로서의 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랑하지도 못하는 헤드윅 그 자신이다. 헤드윅 스스로도 제 1인치 살덩이를 전혀 사랑하고 있지 못했다. 아무데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으로서의 제 위치를 인정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점점 더 저를 잡아줄 누군가의 손을 찾았고, 그럴 수록 불행히도 점점 더 외로워졌다. 저를 부정하는 것 같은 토미의 목소리가 지척에서 들리는 작고 허름한 모텔에서 콘서트를 열며, 관객을 향해 조롱과 분노의 소리를 쏟아내던 헤드윅이 어느순간 치장하고 있던 금발 가발을 벗어버리고, 치렁치렁한 치맛자락을 찢고, 가짜 가슴을 터트리며 미끈한 맨 가슴, 검고 짧은 머리카락, 1인치의 살덩이를 매단, 남자도 여자도 아닌 헤드윅 그 자신으로 몸부림 치다가 쓰러질 때 어쩌면 헤드윅도 최초로 그 사실과 직면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제 몸에 붙어 있는 1인치의 살덩이에게 가장 혹독했던 것은 그 누구도 아닌 헤드윅 본인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 끊임없이 헤드윅의 존재를 숨기려고 하는 것 같았던 토미가 노래한다. 미안하다고, 그땐 저 또한 어렸다고. 어렸던 토미가 성장하여 제 과오를 돌아봄과 동시에 그는 헤드윅의 상처도 감싸안는다. 기적과 같은 사랑, 변하지 않는 소속감, 그로 인해 불완전한 자신이 완전해지기를 바랐던 헤드윅, 자신 또한 자신을 불완전하다 여기고 완전히 인정할 수 없었던 그에게 토미는 노래 한다. 세상엔 오묘한 마법같은 건 없다고, 영원한 사랑도 없다고. 그를 통해 자신을 완성시키려는 헤드윅의 바람은 불가능하다고. 이어 그는 말한다. 이제 받아들이라고. 당신 존재의 이유를. 당신은 그대로 아름다운 사람이노라고. 그걸 헤드윅이 몰랐을리 없다. 그럼에도,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토미가 저 또한 알고 있었으나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을 들려줄 때 헤드윅도 비로소 두려움 없이 건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삶은 그래서 참 불가해인것 같다. 혼자 서야 하지만, 온전히 혼자서는 결코 설 수가 없는 것이다. 헤드윅도, 토미가 그렇게 말해줄 때야 홀로 설 수 있었으니까. 우리는 모두 혼자지만, 타인의 온기가, 인정이, 애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또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늘 흔들리기 마련이다.


짧은 검은 머리, 매끈한 맨 가슴, 짧은 핫팬츠. 1인치의 살덩이가 달린 경계인의 육체로 무대에 서서 헤드윅이 미드나잇 레디오를 부를때 울컥 눈물이 솟을 것만 같았다. 냉대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던 한 인간이, 애타게 제가 속할 곳을 찾아 헤메던 한 나약한 인간이 그 모든 괴로움의 시발점이 자기 자신이었다는 고통스러운 자각을 마주하고 일어서 노래 할때, 저를 둘러싸고 있던 단단한 껍질을 한꺼풀 벗겨내고 한발짝 걸어나가는 그 순간은 고통어린 환희로 얼룩졌다. 그것을 깨달았다고 하여, 초라한 헤드윅의 일상이 바뀌는 것은 아닐 지도 모르나, 또한 깨달음이 긍정적인 자신에 대한 인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통과 고뇌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바닥을 치고 일어서는 한 인간의 걸음은, 비록 비틀거리고 위태로운 것일지라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헤드윅이, 그토록이나 긴 머리 가발을 쓰지 못하게 했던 이츠학에게 스스로 금발 가발을 건넬 때 그 광경은 숭고하기까지 했다. 자신조차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경계인의 육신, 경계인의 삶. 고통과 분노로 몸을 떨던 나날들을 딛고 일어서 그 삶의 인정이라는 방향으로 비로소 고개를 돌린 헤드윅의 절절한 목소리에 얼마든지 '손을 들어' 화답해주고 싶었다.


재웅씨의 헤드윅은, 생각보다 예뻤고, 기대이상으로 훌륭했고 생각했던 것 만큼 정적이었다. 헤드윅은 콘서트와 극의 중간에 위치한다. 배우들은 얼마든지 애드립을 칠 수 있고, 관객과 소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재웅씨의 헤드윅은 그런 측면에서는 상당히 정적이고 소극적이다. 극이 가지고 있는 오픈적인 구조와 소통 가능성을 축소시킨다는 점은 비판대상일 수야 있겠으나 그분의 연기 스타일을 익히 아는 나로서는 그리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그분의 헤드윅을 보러가면서 내가 바랐던 캐릭터에 대한 진지한 접근, 극에 대한 밀도 높은 해석, 일관성있는 이야기를 철저히 만족시켜주어, 내가 헤드윅이라는 한 인물을 명확하고 일관적인 스토리를 엮어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만족스러웠다. 그분의 목소리가 워낙 미성이신지라, 락적인 이 뮤지컬의 곡들이 얼마나 어울릴까 싶었는데, the origin of love나 midnight radio 외에도 앵글리인치 등 폭발력있는 곡들도 물론 고음 부분에서 다소 버거운 점이 있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썩 훌륭하게 소화하셔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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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이(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