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07/08/23 [클로져] 색다른 느낌, 경쾌한 수사물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CSI를 필두로, 미드에는 갖가지 수사물이 넘쳐난다. 미국의 여름 시즌 동안 방영되는 클로져(The Closer) 역시 강력범죄를 다루는 수사물이다. 그러나 클로져는 강력범죄를 다루고 있지만 끔찍한 살인 사건의 현장을 샅샅이 파헤치지는 않는다. 강력범죄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피해자들은 때때로, 잔혹하게 살해되기도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그 광경이 전면으로 드러나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라도 이 드라마를 보는데 무리가 없다. 이 드라마에서 범인을 잡는 방법은 현장을 이 잡듯이 조사해 증거를 잡아내는 것도 아니며, 범인의 행동방식을 추적하고 예측하여 범위를 좁혀서 체포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쓰는 방법은 바로 범인의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다. 용의자가 처음 한 거짓 진술을 뒤집어서 자백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 브랜다의 주무기다.

 

 

브랜다는 거짓말과 회유와 설득, 때로는 협박까지 능수능란하게 사용하여 상대를 함정으로 이끄는데 탁월한 실력을 가졌다. 심문실 안에서 브랜다는 매우 능청스러우면서도 날카롭다. 그녀는 때로는 순진한 척 범인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다가, 그가 허점을 내보이는 순간 돌변한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세우고 자신의 진술을 빤빤하게 고수하려던 범인이 브랜다의 전술에 말려들어 자신이 공들여 쌓아왔던 알리바이를 제 손으로 무너뜨리고 결국 자백을 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짜릿한 쾌감마저 느껴진다. 사실 범행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토대로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라, 자백을 통해 범인을 잡는다는 컨셉은 자칫하면 허술하거나 억지스럽게 보일 수 있다. 결국 시청자들이 범인이 자백을 한다는 점을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수사관은 범인을 코너로 몰아넣어야만 한다. 그리고 클로져는 간혹 억지스러운 설정이 보이기는 해도 많은 에피에서 훌륭하게 범인의 자백의 순간,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데 성공한다.

 

 

이 드라마의 또 하나의 매력은 강력 범죄를 다루고 있는 수사물임에도 극 전반에 도도하게 흐르는 유머다. 이 드라마가 다른 수사물에 비해 보기 편한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노골적으로 코믹한 컨셉으로 극을 끌고 나가는 것은 전혀 아니다. 사건은 심각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 역시 여느 수사물 못지 않게 전문적이며 진지하다. 그러나 상황과 캐릭터로 요소요소에 웃음이 터져나올 만한 장면들을 솜씨 좋게 배치했다. 등장인물들은 극의 상황에 따라 무척이나 심각하고 진지하게 행동하고 있음에도 시청자들이 웃을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을 연출해 내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장면들이다.

 

 

주인공인 브랜다와 경찰서장인 포프는 과거에 연인이었고, 현재 브랜다에게는 동거를 하는 연인이 있는 상태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종종 묘한 기류가 흐른다. 그런 상황에서, 에피를 시작하면서 두 사람이 함께 호텔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을 비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사뭇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고, 포프는 엘리베이터에 타서 버튼을 누르는 것 조차 잊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어색하고 기묘한 분위기로 나란히 호텔 복도를 걸어서 한 룸 앞에 멈춰선다. 포프는 내가 열지, 라고 말하고 문을 연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두 사람이 새로 연애라고 하겠다는 건가? 상상이 날개를 달고 뛰쳐나가려는 순간, 문 안쪽에서 번쩍하고 플래쉬가 터진다. 이건 또 뭐야, 하는 때 문 안쪽에서 다른 수사관들의 바쁜 움직임이 보인다. 그 중 한사람이 포프와 브랜다에게 말을 건넨다. 늦게 오셨네요. 그곳은 살인 사건 현장이었던 것이다!

 

 

클로져의 유머는 이런 식이다. 미드 중에서도 유머감각이 발군인 웨스트윙의 경우 보통 웃음 유발이 재기 넘치는 주인공들의 농담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극 중 인물들과 함께 웃는 경우가 많지만, 클로져에서는 상황 연출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화면 속 인물들은 심각한데 보는 사람은 웃음을 터트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웃더라도 극중 인물들은 심각한 상황에서 수사를 하는 이야기의 맥을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다. 그래서 클로져는 진지한 본격 수사물의 성격을 잃지 않으면서도 유머를 극 전반에 자연스럽게 풀어 넣어 훨씬 말랑말랑하고 보기 편한 드라마로 완성되었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 매력은 바로 캐릭터이다. 이들 캐릭터는 위에서 언급한 드라마의 유머를 가능케 하는 공신이기도 하다. 클로져의 수사관들은 다들 어딘가 조금씩은 어리숙하다. 그러나 이들의 어리숙함은 웃음을 유도하기 위한 설정으로 계획된 것이라기 보다는 현실적이고 친근한 인물들 보여주기 위한 설정에 더 가까워 보인다. 수사관들이 가지고 있는 빈 구석은 누구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허술함이며, 그 캐릭터 자체에 완벽하게 체화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 한 두 군데의 빈 구석으로 인해, 당사자에게는 무척이나 심각하거나 당황스러운 일임에도 지켜보는 제 3자는 웃음을 터트리는 사태에 종종 마주하게 되는 것처럼, 클로져의 등장인물들도 그런 상황에 빠지고 이를 보면서 시청자들은 웃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 브랜다 존슨 역시 그렇다. 그녀는 상대의 심리를 쥐락펴락해 자백을 받아내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진 인물이지만, 심문실 밖을 나서면 설탕 중독으로 단 것을 입에서 떼지 못하며 종종 길치에 가까운 듯 보이는데다가 남자친구와의 동거를 부모님께 들킬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건강을 위해 설탕을 끊겠다고 말하며 자신의 구역 안에서 모든 설탕을 금지하지만, 여전히 설탕에 이끌려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어느 날은 평소와 달리 초조해 보이고 실수도 잦은 브랜다의 모습에 시청자는 물론 팀원들도 모두  그 이유를 궁금해 한다. 그런데 결국 밝혀진 원인은 그녀가 그날 마흔이 되었다는 것. 그 에피를 통해 마흔이란 나이가 된 한 여자의 심란함이 무척이나 현실적이면서도 사랑스럽게 그려진다.

 

 

그렇다. 클로져의 주인공은 벌써 마흔이나 된 여성이다. 게다가 그다지 미인도 아니다. 마흔이라지만, 서른 초반이라도 믿기 힘들 정도의 탱글탱글한 우리나라 드라마의 여주인공과는 다르다. 얼굴에 잔주름도 자글자글하고 잡티도 보인다. 그렇지만, 한 에피, 한 에피를 보아갈수록 그녀가 무척이나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그것이 클로져 캐릭터들의 진정한 매력이다.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머리가 백발인데다가 불평불만도 많고 심술궂어 보이는 프로벤자, 플린 경위도 잘생기지도 않은 중년 아저씨들이지만 극에 몰두할수록, 그들의 엉뚱한 콤비 플레이에 환호를 보내게 된다.

 

 

많이 변화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 드라마가 중년을 그리는 시각은 여전히 편협하다. 드라마에서는 마치 인생의 황금기가 서른 초반에서 중반인 것처럼 지위와 명성을 그들에게 부여하고 팔팔한 젊음까지 얹어 환상적인 화면을 꾸며낸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사회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는 것은 사십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사십 이후의 중년들의 삶은 지위나 명성도 얻지 못하거나 있다 해도 비루하기 십상이다. 책임져야만 하는 삶의 무게에 지치고 힘들어서 퀴퀴함이 느껴지는 모습들. 물론 그것은 많은 이들이 처해진 현실의 삶의 반영이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인가? 중년들의 삶은 그렇게 무겁기만 할까. 사실상 그 시기는 젊은 시절 동안 차곡차곡 자신의 직업적인 커리어를 쌓은 이들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는 맺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클로져는 활달한 베테랑 수사관들을 주요 인물로 삼고 그들의 활약을 무척이나 경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클로져를 보면서, 우리나라 드라마들도 이제 사십 이후 중년들에게 그들의 보다 당당한 자리를 찾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클로져의 등장 인물들은 대부분이 한창의 젊음도 없고, 외모도 번쩍번쩍 빛이 나지는 않지만, 한 에피씩 지나갈수록 그들 모두가 전보다 더 반짝이고 전보다 더 사랑스러워진다.


P.S. - 막 쓰다 3부작 이후에 맘을 완전 놓아버렸나보다. (笑) 편하게 썼다. 블로그에 쓰듯이. 그저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여전히 개요라고 할 순 없어도 그래도 대강의 아웃라인은 작성하고 쓰던것도 관두고, 블로그 창을 열어두고 생각나는 대로 적어가던 습관대로 적었다. 그래서 글이 블로그에 써놓은 글들이 종종 그렇듯이 이랬다 저랬다 한다. (까르르) 사실은 쓰다보니 다른 게 막생각이 나더라구. 그래서 쓰기 싫은거 시작은 했으니 끝은 보자- 하고 끌고가다보니 또 길이는 주체할 수 없이 길어지고, 이야기는 샛길로 새면서 끝이 났다. 쓰기 싫어도 길어지고, 혼자 신나도 길어지고. 언제쯤 난 하고 싶은 말을 간략하고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게될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이(J)
이전버튼 1 2 3 4 5 ... 12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