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al science/주저리'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8/07/29 공적 영역 vs. 사적 영역 (4)

 

재미있게도 우리가 공인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듣는 것은 연예인이 물의를 일으켰을 때이다. 공인으로서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하다, 혹은 공인으로서 행동을 조심해야한다  라는 말들이 쓰인다. 물론 그때마다 연예인이 과연 공인인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지만, 연예인이 공인인가, 아닌가가 이 글의 초점은 아니다. 오히려 초점은 우리가 ‘공인’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공인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첫째 국가,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고 둘째, 공직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가 보통 공인이라는 말을 쓸 때는 전자의 의미로 주로 사용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공인’이라고 칭하며 그들에게 일반인들과 다른 책임감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곧 우리가 공적인 역할과 사적인 역할,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 이후, 민주주의 사회가 도래하면서 명목상으로는 모든 개인이 평등한 참정권과 정치적 자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루소가 대의제 정부 하에서 사람들이 참정권을 갖는 것은 단지 선거일뿐이며 그 이후에는 다시 노예상태로 돌아간다고 주장한 이래, 많은 이들이 대의제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적인 존재로서 살아가는 개인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펴왔다. 단지 공직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외에, 국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로 범위를 넓게 잡고 생각을 하더라도 언론인들과, 유명 시민단체와 같은 인지도 있는 집단에서 발언권을 가진 사람들, 다양한 분야의 유명 인사들을 고르지, 일반 국민들을 공인이라는 단어 안에 포함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민주주의 사회라고 해도, 우리와 같은 일반 국민들이 가진 자유는 고작 일상생활과 같은 사적 영역에 국한되는 것이라는 주장이 그럴 듯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개인이 가진 정치적 자유랄까, 혹은 참정권은 투표일에 아주 제한된 형태로만 행사될 수 있고, 그 이후에는 다음 투표일까지 사적 영역에 갇히며 공적 영역의 직업 정치인의 전유물로 남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의 등장은 이러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전통적인 구분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렇다면 근대 이후,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권리와 투표권을 부여받은 개인은 왜 공적인 존재로서 행동하지 못하고 사적 영역에 고립된 상태로 남았던 것일까? 한 사람이 자라면서 받는 모든 교육은 모든 개인이 민주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개인이 가진 표 하나가, 결국 모여 국민적 의사를 창출한다고 가르치며, 한 사람의 표가 가볍게 느껴지더라도 ‘나 하나쯤이야’라는 마음으로 모든 이가 자신의 표를 가볍게 여기면 결코 민주주의 사회가 성립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론적으로야, 우리 모두 모든 개인의 한 표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결국 투표를 포함하여 어떠한 방법으로든 사회에 특정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외따로 떨어진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집합적으로 표현되는 집단의 의사가 필요하다. 그런데 개인이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고 관찰시킬 수 있는 집단을 구성할 수 있는 한 일원으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고립되고 외따로 떨어진 한 개인으로써만 자신을 규정한다면 그 표의 진정한 의미를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일정한 나이만 되면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투표권의 무게조차 제대로 알기 어려운 상황에 그 이상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이나 행동을 수행할 수 있는 공적인 존재로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공적 자아를 형성하고 민주 시민으로서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려면 집단과 연대에서 유리된 상태여서는 곤란하다.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가족, 촌락 등의 집단생활의 억압에서부터 근대는 개인을 자유롭게 풀어주었으나, 개인의 자유만을 강조하여 집단의 유대와 연대의 고리를 파괴한 셈이었다. 고립되고 원자화된 상태로 자유로워진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란 고작 사적인 영역의 자유에 제한되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에 어떤 책에서, 반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통치자들은 피치자들이 세 명 이상 모여 있는 것을 금지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결국 개인이 언제까지 개인으로만 존재한다면 두려운 존재가 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개인이 모여 집단을 형성할 수 있다면 그때야 개인들은 비로소 두려운 존재가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적인 존재로서 개인이 성립하려면, 의사를 표현하여 그 뜻에 동의하는 이들을 모으고 그리하여 의사를 관철시킬 수도 있는 집단을 형성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개인이어야 한다. 그런 자유를 가지고, 그러한 자유를 인식할뿐더러 실제로 그 자유를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개인이 사적 영역에 고립되지 않고 자유롭게 공적 영역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진정 자유롭고자 한다면 가족이나 학교, 직장과 같이 주어지는 집단 외에 개인이 어떤 집단을 만들거나 가입하거나 행동하는 것이 자유롭고 폭넓게 보장되어야 한다. 개인은 언제든 원하면,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집단을 형성할 수 있고, 집단행동을 할 수 있고, 의사표현을 할 수 있어야만 한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 원칙적으로 이 자유는 허용된 것이었으나 기술적으로 이를 실현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근대를 통해 집단의 ‘억압’에서 자유로워진 개인들이 새롭게 자유로운 집단 형성과 연대를 하지 못하고 원자화된 채 반쪽의 자유만을 누리고 떠돌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이 이것을 가능케 했다.

인터넷은 개인에게 다수를 향한 자유로운 발언권을 부여하고, 서로 간의 의사소통을 용이하게 하며,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서 집단 형성과 네트워크 구축을 가능하게 했다. 사실 이러한 인터넷이 등장하던 초기, 인터넷의 의사소통 능력으로 인해 인터넷이 일종의 공론장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일상의 상당부분을 차지한 이후 나타난 현상은 이러한 기대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인터넷이 공론장으로 기능하기 보다는 악플로 대표되는 싸움터로 변모했고, 익명성으로부터 초래되는 인신공격과 더 나아가 범죄의 위험, 넘쳐나는 불법 다운로드로 인한 저작권 침해 문제, 인터넷과 게임 중독 등 부정적인 결과가 강조되는 공간으로 전락하는 듯했다. 굳이 이렇게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지 않더라도, 인터넷은 정치나 사회적인 측면에서 공론이 필요한 사안들에 대한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논박이 오가는 장소가 아니라 단지 개인의 취미나, 기호적인 활동이 주가 되는 유희의 공간이라는 냉정한 평가가 내려졌었다. 즉 인터넷은, 공적인 자유를 확대시키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사적 영역의 자유를 확대하고 보장하는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 평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이 개인에게 자유로이 집단을 형성하고, 집단행동을 할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보장을 해주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권력의 이동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이 일상적으로 공론장의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에 우리는 모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특별한 이슈가 부각되었을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물론 이러한 때도 인터넷이 공론장으로 변모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터넷이 아주 효과적으로 집단행동을 추진하게 하는 통로로 기능한다는 것만은 부인 할 수 없다. 특히 정부의 쇠고기 협상에 대한 반대로 대대적인 촛불시위가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2008년 여름,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사실 다음 아고라와 같이 정치적인 공간들도 물론 존재하지만 인터넷 상에 존재하는 다수의 커뮤니티, 동호회들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색채가 사실상 거의 없는 취미 생활이나 일상생활, 기호적인 것들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각종 팬클럽 커뮤니티들이나, 요리나 가사일과 관련된 커뮤니티, 패션과 관련한 것, 외국어 공부를 위한 커뮤니티 등등 이러한 커뮤니티들의 활발할 활동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아마 우리 중 대다수가 그러한 커뮤니티들에 중복으로 가입되어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블로그 역시 특정 주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블로그 보다는 주로 ‘개인 블로그’로 불리는 일기장과 유사한 일상적인 공간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껏 인터넷 커뮤니티나 블로그가 의미 있는 공적 영역으로 평가 받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러한 탈정치적이고 비정치적인 커뮤니티나 블로그의 성격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성원들이 원하고 다수의 동의가 있다면 언제든 정치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는 것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다.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인터넷을 통한 발언과 의사소통, 집단형성과 연대, 그리고 집단행동 능숙해진 세대들은 선거나 쇠고기 협상과 같은 관심 이슈가 부각되자 대대적인 활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의 활동은 곧,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기존의 구분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이번 쇠고기 협상 반대 촛불시위의 경우에서도 인터넷이 이 시위를 촉발시키고 주도했다는 것보다 비정치적, 탈정치적인 커뮤니티들이 이 사태를 맞이하여 정치적인 커뮤니티로 일시적으로 전환되고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시위의 규모가 확대되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현재 광우병대책위원회가 조직되어 전면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미 시위가 어느 정도 일상화되고 궤도에 오른 이후였고 비정치적, 탈정치적인 성향의 커뮤니티들의 참여가 초창기 시위의 흐름을 일파만파로 확대하는데 기여했다. 다음 아고라나, 디씨인사이드 외에도 여성주의 포탈을 표방하고 있는 마이클럽(miclub.com), 연예계에 관한 커뮤니티인 베스티즈(bestiz.net), 요리 커뮤니티인 82쿡(82cook.com), 토이 팬 페이지인 다방(www.toymusic.com), 그리고 여학생들이 주축으로 활동하고 있는 각종 아이돌 팬클럽들 또한 상당히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이들 사이트들은 평소에는 거의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는 곳이었으나, 협상 타결 이후 조금씩 비판의 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시위가 시작된 이후부터는 아예 게시판의 대다수 글이 정치적인 목소리를 표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여성 포털사이트인 마이클럽의 경우 ‘집중! 시사포커스’라는 게시판이 따로 존재함에도 시위와 관련하여 적극적으로 활동을 주도하는 것은 ‘종알종알 연예계“ 게시판이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인터넷 기사나 실시간 중계에 대한 정보, 집회 일시에 대한 정보 등을 자발적으로 ‘퍼 나르기’ 하였고, 글과 댓글을 통해서 활발하게 의견교환을 하고 여론 형성과 시위 참여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이들 사이트들이 단지 반대 여론을 공고히 하고 구성원들이 시위에 참여하는 것을 독려하고 이끌어낸 것을 넘어서 사이트 내부에서 독자적으로 시위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베스티즈는 처음에는 일본 음악 사이트로 출발하여 현재는 정체성이 불분명한 커뮤니티로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데, 보통 연예계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베스티즈에서는 현재 시위와 관련한 활동을 주관하는 베스티즈 광고 위원회(http://cafe.daum.net/bestiz2)가 사이트 내부에 자체적으로 조직되어 관련한 일들을 담당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활동은 2008년 5월 27일부터 보름간의 모금을 활동을 통해 시위 현장에 물품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보름간 380여만원을 모금하였고 이는 시위 현장에 긴 자루 부채와, 미니매트, 생수, 초코파이를 전달하는 데 쓰였다. 부채와 미니매트의 경우에는 시위에 걸맞은 디자인으로 따로 준비하였다. 광고위원회의 설립 역시 사이트 내부에서 다각도의 의견제시가 이루어지던 중에 타 사이트들의 광고게제에 자극을 받아 우리도 광고를 내자라는 의도에서 자율적으로 조직되어 따로 다음에 카페까지 열어 활동하고 있다. 또한 광고위원회의 구체적인 활동 방향과 그 내용의 결정, 모금활동과 현장 활동 참여,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업은 본래 베스티즈 커뮤니티 내에서 자발적인 참여로 진행되고 있다.

여성 포탈을 표방하는 마이클럽에서도 2008년 5월 27일부터 6월 8일까지 모금활동을 통해 광고비를 모았다. 이들은 SIRclub, 디비디 프라임, 뽐뿌, 82쿡 등 다른 커뮤니티들과 연계하여 일을 진행시켰다. 그리고 광고 시안 역시 커뮤니티 내부의 자체적인 공모를 토대로 하여 결정하였다. 그리고 완성된 광고를 한겨례, 경향, 메트로, 부산 일보, 대구매일 등 일간지에 1,2차에 나눠 광고를 게재했다. 모금은 베스티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이 제안이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게 되어 구체적으로 추진되었다. 커뮤니티 내 다양한 인력자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단 일이 추진되게 되면 디자인과 같은 다소 전문적인 분야의 인력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고, 여러 아이디어들이 게재되면서 전문적인 광고들 못지않은 세련된 광고 시안들이 완성되었다. 또 한편, 시위와 관련한 왜곡된 보도를 한 조선, 동아, 중앙일보에 광고를 게재하는 업체들을 명단을 매일 업데이트하여 이들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는 활동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들 외에도 다음의 “소울드레서” 카페나 “화장발” 카페, 구봉숙의 도시탈출 팬 카페 등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많은 커뮤니티들 또한 광고를 게재하거나 또 다른 다양한 형태의 참여를 보여주고 있다.

모든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활동을 운영자들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카페 내부의 구성원들의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참여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활동들은 한 두 사람의 아이디어 제시로 시작하여 동의를 얻고, 대개는 최초 제안자와 초기에 참여를 선언한 몇 사람에 의해 일이 주도된다. 사실 모금과 같은 금전적인 사안은 자칫 뒷말이 나올 수 있는 민감한 문제임에도 대부분의 커뮤니티에서는 계좌 관리와 모금현황, 그리고 정산 내용을 정확하게 공지하여 상당히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 했다. 그러나 사실 인터넷 커뮤니티들의 이러한 활동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이번 사태로 인해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이미 그 동안 자체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집단 활동들을 해왔다. 그리고 그 활동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번 쇠고기 협상 반대 촛불시위에 참여한 방법과 동일한 것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 활동의 다수가 정치적인 것과는 관련 없는 커뮤니티 자체적 성향에 의한 활동들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것이 공적인 성향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어려웠을 뿐이다.

인터넷의 커뮤니티들은 유사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다. 커뮤니티마다 다르지만 보통 실명보다는 닉네임을 위주로 활동이 이루어지고 익명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커뮤니티가 일정 기간 이상 존재하게 되면 많은 이들이 동일한 닉네임으로 장기간 의사소통을 하게 되고 이로써 내부의 자체적인 규율들도 성립하고 나름의 신뢰가 구축되는 상태가 유지 되게 된다.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이러한 신뢰성을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에 커뮤니티 내에서 집단적인 활동이 어렵지 않게 이루어진다. 굉장히 많은 커뮤니티들 내부에서는 ‘공동구매’라는 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화장품과 관련된 커뮤니티에서는 화장품을 공동구매하고 컴퓨터와 관련된 커뮤니티에서는 컴퓨터 부품들을 공동 구매한다. 공연 예술에 관한 커뮤니티들에서는 티켓을 공동구매하며 팬클럽들은 연예인 관련 물품들을 공동구매 한다. 또 이들 중 다수는 자체적으로 물품들을 제작하여 구매하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은 특히 팬클럽 커뮤니티에서 두드러지는데, 콘서트 때 사용할 야광봉과 같은 응원 물품 등을 비롯하여 연예인의 활동과 관련한 글이나 그림을 모은 팬북 등이 자체 제작되어 공동구매의 형태로 팔린다. 최근에는 드라마나 라디오 프로그램에 대한 팬 커뮤니티 등에서도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나 청취자들의 감상문을 모은 ‘리뷰북’을 제작하는 것도 흔한 일이 되었다.

이러한 활동 중, 근래에 벌어진 슈퍼주니어 팬클럽의 활동은 여러 각도에서 의미 있게 살펴볼만 하다. 13인조 아이돌 그룹인 슈퍼주니어는 그룹의 데뷔 초기부터 멤버 구성을 두고 기획사와 팬들 사이의 시각 차이가 존재했다. 기획사는 그룹 결성 초기부터 13명의 멤버들을 시기에 따라 교체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팬들은 이에 대해 끊임없이 거부 의사를 밝혔다. 슈퍼주니어 팬들은 자신들의 거부의사를 기획사 측에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기획사 앞에 반대 시위 집회를 여는 등의 집단행동을 취했다. 시위 집회 역시 경찰서에 미리 신고를 하는 등 정식으로 합법적 절차를 밟아 개최하였고 더 나아가 모금 운동을 통해 포커스와 메트로 등 무료신문에 반대 의사를 전하는 광고를 게재했다. 그리고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아이돌 그룹과 팬들의 관계를 넘어 기업과 소비자의 구도로 이 다툼을 파악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의도로 1팬 1주 운동이라는 주식 구입 운동을 시작하였다. 2008년 3월 1일부터 25일까지 자체적으로 모금활동을 통해 팬 연합이 구입한 SM의 주식은 총 11만 5천 656주였다.

이들의 행동이 성공적인 결과를 거둔 것은 아니었다. 기획사는 팬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멤버 2명을 추가해서 중국에서 슈퍼주니어M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해도 특히 어린 학생들이 많은 아이돌 팬클럽에서 이런 활동을 벌였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롭다. 우선, 이전에는 팬클럽 조직 자체가 기획사를 통해 조직되었다. 과거 유명 아이돌 그룹의 해체와 관련한 시위와 집회가 이미 있었지만 그때는 이를 주도한 팬클럽 조직 자체는 기획사에서 조직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활동을 주도하는 것은 자발적으로 생긴 인터넷 상 팬 커뮤니티들이고 각 팬 커뮤니티 간의 연대를 통해 소위 ‘연합홈’이라는 것을 따로 마련하여 활동을 하고 있다.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연대이며, 조직체인 것이다. 또한 그 내부에서 다양한 아이디어와 의견이 제시되고 무엇을 선택하여 행동에 옮길 것인지에 관한 결정이 내려지고 실행하는 과정들이 상당히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된 점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팬북을 제작하거나 응원도구들을 제작, 공동구매하는 선에서 벗어나 이들이 실행에 옮긴 ‘1팬 1주’ 운동과 같은 것은 이미 그자체로 사적인 영역을 넘어서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라는 공적인 차원의 접근이며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단지 어떤 연예인의 팬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공적인 활동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그것은 엄연히 사적인 영역의 활동이다. 그러나 소비자로서 같은 요구 사항을 공유하는 이들과 집단을 형성하여 기업에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표명하는 것은 분명 공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슈퍼주니어 팬 덤의 사례에서, 팬들은 그들 스스로 팬과 연예인의 관계를 넘어서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연대를 조직하여 기획사에게 소비자로서의 요구를 직접 전달함으로써, 자신들의 역할을 공적인 영역으로 전환시켰다. 이들의 행위가 비록 목표한 바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이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는 개인이 집단을 결성함으로써 팬으로서 역할을 담당하는 사적인 영역과 소비자로서 역할을 담당하는 공적 영역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결국 전통적인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사이의 분리 장벽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개인들이 인터넷 상의 의사소통과 네트워크 구축 ,집단 형성의 기능을  통해 스스로 사적 영역을 공적 영역으로 확대 혹은 전환할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었다는 것을 말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주니어 팬덤의 활동은 그 자체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넘나드는 성격을 가진 것이지만 그동안 각 커뮤니티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소규모로 또 산발적으로 이루어진 많은 활동들은 대부분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성격으로 보기 어려웠으므로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평가 외에는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그러나 앞서 한번 언급한 이야기에서 통치자들은 피치자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에 상관없이, 그들에 셋 이상 모이는 것 자체를 금지했다. 통치자들은 그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던, 모인다는 것, 집단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단지 뜨개질 거리를 위해서 모였다고 해도, 계기만 있으면 그 모임은 얼마든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모임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혼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려우나 모임이 함께 하는 것은 보다 쉽고, 개인이 혼자 행동하는 것을 진압하기 쉬우나 모임이 함께 행동하는 것은 누르기 어렵다.

  그래서 인터넷과 인터넷 상의 커뮤니티 형성으로 인해 개인들이 자체적이고 자율적인 집단행동이 가능해졌다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한 변화였다. 각 커뮤니티들은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공동 구매와 같은 다양한 행사들을 이미 수차례 진행했고 그 와중에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구성원들 사이에 다툼이 생기기도 하는 등의 다양한 경험을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의 축적 통해 각 커뮤니티들은 이미 일을 진행해 나가는 책임자의 선출이나 진행 순서나 방법, 모금과 정산에 대한 규칙 등에 대해 암묵적인 합의와 지식 습득이 이루어져있는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쇠고기 협상 반대와 같은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나타나자 별 다른 시행착오 없이 각 커뮤니티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축적해왔던 노하우들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성격의 커뮤니티들이 동일한 이슈에 동시다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상당한 파급력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인터넷의 커뮤니티나 블로그 상에서 서로 간의 의사소통과 집단 형성,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연대와 집단행동의 가능성과 능력을 습득한 이들은 공적인 계기가 나타나자 이를 손쉽게 공적인 성격으로 전환시켰다. 거대 언론사가 보도하는 여론을 거부하고 자신들이 직접 참여, 형성하는 여론을 내세워 거대 언론사들과 대항하고 공적인 영역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는 행동에 나섬으로써 그 동안 사적 영역에 고립되어 있던 개인들이 비로소 공적 영역으로 뛰쳐나올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개인들은 초, 중, 고등학교 교육이 완성하지 못했던 공적 자아를 형성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행동을 폭발시킨 사태가 가라앉으면 각 커뮤니티들은 또 다른 계기가 등장할 때까지 다시 탈정치적이고 비정치적인 본래의 성향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시위가 매우 고조되었던 시기에는 위에서 언급한 모든 커뮤니티들에서는 기존에 주를 이루었던 일상 이야기나, 연예인 관련된 언급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이야기들이 언급되는 것을 자발적으로 꺼릴 정도였다. 그러나 시일이 지남에 따라 커뮤니티들은 여전히 정치적 색채를 유지하면서도 이전과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다시 나누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물론 또 다른 계기가 발생하면 각 커뮤니티들은 다시 정치적인 성격으로 무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반드시 긍정적인 측면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이 확장시켜준 의사소통 능력과 집단 형성의 기능이 개인에게 공적의 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는 문을 넓혀준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행동’의 차원에서였고, 공론장의 차원에서는 아니었다. 살펴본 대로 비정치적, 탈정치적 성향의 커뮤니티들이 구성원의 다수의 동의를 얻을 수가 있는 계기만 있다면 정치적이며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게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상적인 상황에서라면 비정치적, 탈정치적 커뮤니티들은 본래의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그러므로 일상적인 상황에서 정치적, 사회적 사안들에 대한 공론의 경험을 한다는 것은 여전히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적인 공론장의 경험은 없이, 비상사태에 대한 행동의 경험만을 갖게 된다면 결국 우리는 또 다시 반쪽짜리 공적 자아를 형성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책임 없는 권력, 의무 없는 권리, 타협 없는 투쟁만을 얻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적 영역에 틀어박힌 채 반쪽 짜리 자유를 얻는 것보다도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이번 소고기 협상 반대 촛불시위와 같은 사안은 개인들은 자신들이 확보한 권력과 능력에 대해서 눈을 뜰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쇠고기 협상 ‘반대’라는 건드릴 수 없고 의심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절대 명령을 두고 행동하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그 내부에서 시위의 방향이나, 광우병 위협에 대한 사실 여부에 관련해서 끈임 없이 논쟁이 발생하고 수정을 거듭하면서 행동의 방향을 점차 합리적으로 이끌고자 하는 노력과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었고 이는 상당히 고무적인 것이었다. 가장 처음 촛불집회가 열리던 날, 청계천에서 받은 유인물의 내용을 읽었을 때는 내일 모레면 공기로도 광우병이 전염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시위가 거듭 될수록 그러한 비합리성은 기대 이상으로 수정이 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논쟁과 의견수렴과 타협은 엄연히 ‘반대’ 입장 내부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쇠고기 협상에 대한 ‘찬성’ 의견을 물론이고, 정부 측의 입장 혹은 정부의 대응에 대해 온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들과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론 판이하게 다른 입장과의 타협을 도모할 수 있다는 호사스럽고 이상적인 꿈을 꾸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번 쇠고기 협상과 같은 문제는 건강과 직결된 아주 민감한 사안이고 절대 다수가 그 협상에 대해서는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은 알고 있다. 나 역시도 확고하게 이번 쇠고기 협상에 관해서는 정부가 전적으로 잘못했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대통령, 그리고 협상에 대해 찬성 혹은 옹호의 입장을 보이는 이들을 ‘역적’으로 낙인찍어 내모는 식의 대응 방법에 있어서는 두려움마저 들었다. 아무래도 공론이 아니라 행동의 장으로 역할을 하다 보니 그 안에서는 합리적 의견보다는 과격하고 선동적인 의견들이 열렬한 지지받기가 쉽다는 것도 우려할만한 것이었다. 원래 민주주의라는 것은 민주주의 이념 자체에 대한 반대까지도 용인 하는 것이라는 감안할 때 반대 의견에 대한 보다 합리적인 대응과 이성적인 반응을 갖추지 못한다면, 개인들이 확보하게 된, 요구하고 행동할 수 있는 권력은 민주주의의 확대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혼란과 불안정을 야기할 수도 있다.

 개인은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집단을 형성하고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으며, 이를 통해 비로소 반쪽짜리가 아니라 보다 완전한 형태의 자유에 근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시대 이전에는 투표일 외에 시민이 단독으로 어떤 발언하거나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공직자이거나 매스 미디어를 통할 수 있는 유력인사여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 일반 시민들의 집단을 형성해 발언이나 행동에 나서려고 한다고 해도 굉장히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생업과 일상을 유지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완벽하게 자유롭고 평등한 것은 아니지만, 개인이 발언을 할 수 있고 집단을 결성하고 유대를 형성하여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폭 넓은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공직자나 유력인사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적 영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시민운동가의 명함이라도 달아야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도 가능하다. 누구나 촛불 시위를 제안할 수 있고, 대통령의 퇴진 서명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함께 시위에 나설 이들을 조직할 수도 있다. 그 와중에 참여하는 이들의 생업과 일상은 또 일상대로 굴러가고 있다.

우리는 드디어 루소가 비관한 것을 뛰어넘어, 투표일 이후에도 자유로울 수 있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러나 교과서가 긴 세월 우리가 가르쳐주었듯이 자유에는 책임이 반드시 뒤따라야만 한다. 많은 이들이 촛불 시위를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랑스러워할만 한 일이다. 그러나 자랑스러워함과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좀 더 두렵게 생각할 필요도 있다. 우리는 집단을 결성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다. 또 우리는 많은 정보를 안다. 이전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며, 권력기관은 이를 이전만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현명한가? 우리는 많이 알고, 그래서 보다 권력을 많이 가졌으며, 보다 적극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우리의 것인가? 사회를 보는 시선을 우리가 다양성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로 진지하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적극적으로 벼려낸 적이 있는가? 이념의 시대를 지난 한 교수님은 이념의 억압 속에서 자유로울 너희들은 다양한 가능성 속에서 스스로를 새롭게 창조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념의 억압이 사라진 틈에서 우리는 흘러들어오는 정보 속에 몸을 맡긴 셈이었다. 다양성의 세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껍데기 속에는 대세를 거스를 수 없는 대중의 무시무시한 억압이 있다. 우리는 분명 이전에 비해 보다 많은 권력을 쥐었다. 그러나 쥐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단지 권력을 우리가 쥐었다는 그 사실이 세상이 이전보다 더 정의롭게 만들 수 있는가? 우리는 권리를 가졌고, 또한 책임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그것은 섣부르게 '안다'라는 인정이 아니다. 그 보다는 더 고통스럽고, 더 진지한 ‘무엇’이어야만 할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이(J)
이전버튼 1 2 3 4 5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