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21 21:11
누나 가슴에 삼천원쯤은 있는거잖아요.
아무리 봐도, 이 영화는 민규동 감독의 승리다. 원작 만화가 그랬듯, 이 영화도 누나(누구나) 가슴 속에 삼천원(상처) 정도는 가지고 있다는 걸 이야기 한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나는 민규동 감독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화면은, 등장인물들 각자의 상처들을 맞물려 보여준다. 부잣집에, 잘자란 진혁은 유괴된 과거와 그 잊어버린 기억으로 인해 악몽에 시달리고, 허우대 멀쩡해 보이는 수영은 가정폭력에 시달린 어머니와 허우대 빼놓고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청년이라는 상처가 있다. 전설의 명인으로 불리는 천재 파티쉐지만 게이인 선우의 삶도 녹록하진 않고, 최연소 챔피언이었지만, 병으로 결국 권투를 관둬야만 했던 기범의 사연도 마음 아프다. 또 어떤 남자는 어둡고 건조한 얼굴로 어두컴컴한 방안을 배회한다. 복잡하게 맞물리는 그 화면들은 그러나, 산만하지 않고 시선을 확 잡아끈다. 그 도입 장면이, 이 영화를 정확하게 대변하는 것 같았다.
영화는 오만가지 장르가 다 등장한다. 개그였다, 로맨스가 되었다가, 청춘 영화였다가 또 뮤지컬이 된다. 그런가 하면 금세 호러와 스릴러를 오간다. 사실 개그였다, 로맨스였다, 청춘물이었다가 스릴러가 되는 건 원작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민규동 감독이 이 만화를 영화화한다고 했을때, 미쳤다, 라는 생각부터 했다. 여고괴담 2 DVD UE까지 보유하고 있는 감독님 팬이지만 그랬다. 만화는 달달해 보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정서도 복잡하고 느낌도 기묘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서는 호러 영화를 가슴 서늘한 성장담이자 연애물로 만들고, 또 단순하지 않은 고등학생 여자아이들의 우정을 제법 정확하게 묘사할 뿐아니라 거기에 학교 현실에 대한 비판까지 담아낸 여고괴담2 의 솜씨를 내가 너무 얕봤다는 생각을 했다. 원작의 복잡미묘한 이야기에, 뮤지컬이라는 장르까지 더 끼워넣어 조리한 민규동 감독의 솜씨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불과 얼마전 '맘마미아'를 보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뮤지컬 장면들을 접한 터라, 이 영화에 뮤지컬 장면이 있다는 것에 별 기대를 안했다. 그러나 뮤지컬 영화였던 '맘마미아'보다도 훨씬 더 그렇듯 하고, 영화에 한치 어색함 없이 녹아든 뮤지컬 장면을 보여줘서 박수를 쳤다. 게다가 진혁의 악몽 장면들에서는 깜짝 놀라기도 했고, 유괴사건을 풀어가는 장면에서는 긴박감도 상당했다. 매우 이질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그 모든 장면 장면들은 어색하지 않게, 매우 매끄럽게 흘렀다. 뮤지컬 보다도 더 뮤지컬 적이고, 웬만한 호러 영화보다도 오싹했다.
주연 배우 네 사람은 확실히 눈이 즐거운 캐스팅에 원작을 떠올려 봐도 꽤 적절한 캐스팅이다 싶었지만 연기가 아주 좋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주지훈과 유아인은 좋은 장면이 더 많았지만, 최수영과 김재욱은 어색함이 더 컸던 듯 했다. 그래도 넷은 썩 잘 어울렸고, 무엇보다 영화 속에 폭 잘 감겼다. 숱한 장르들이 이 영화 안에서 굉장히 멋지게 배합되었던 것 처럼. 키 크고 맵시도 좋았고, 멋지게 나왔던, 주지훈의 '간지'가 제법 눈길을 끌었지만 역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엄지 손가락 두개를 쳐들어주고 싶었던 건 단연, 민규동 감독이었다. 아우, 민규동 감독 멋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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