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31건

  1. 2008/07/25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6)
사용자 삽입 이미지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촬영 당시부터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은 작품이고, 나 역시 기대했다. 기대대로, 흥행 몰이가 예사롭지 않은 듯 하여 귀찮은 몸을 재촉해 오늘 보고 왔다. 보통 인기가 많아지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말이 많아지면, 뭘 나까지 보고 그래 하면서 접는 이상한 버릇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본 감상은, 그렇게 놓쳐버렸으면 정말 아쉬웠을 영화다, 라는 것. 이러한 장르의 영화, 이런 형태의 영화, 쾌감과 속도감을 목표로 하고, 깊이 있는 사고가 아닌 뛰는 심장을 요구하는 영화의 목적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이 영화의 의도와 목적을 받아들인다면, 놈놈놈은 크게 흠잡을 데가 눈에 띄지 않는 영화라고도 생각했다. 영화 전체적으로 흘러넘치는 박력이 모든 걸 압도한다.

요즘에는 영화 잡지도 잘 안읽고 리뷰도 잘 찾아읽지 않아서 어떤 평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친구에 의하면 좀 취향을 타는 듯 하다는 듯도. 같이 본 일행에게 그래서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 대체 누가 살아남은거냐 라는 말들을 듣기도 했다는 데, 거기에 대해서 영화를 보기도 전에 난, 이 영화에 스토리가 뭐냐고 묻는 건, 올해 쓰릴미의 김우형 네이슨에게 당신은 안경을 언제 떨어뜨리기로 결심하셨나요, 라고 묻는 것과 같은 이야기 아니냐고 대꾸 했었다. 올해 쓰릴미를 보다가 중간에 자버린 친구는 대답할 말이 없는 평이었지만.

애초에 스토리는 기대하지 않고 봤다. 그러나 이 정도면, 이야기도 나쁘지 않은데? 이야기 중심으로 가는 영화가 아닐 경우, 아주 기상천외하거나 헐렁한 스토리라도 용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속을 긁는 수수깡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정도면 이야기도 알차다. 이 영화도 그리 관객의 생각을 요구하는 영화는 아니라지만 생각하지 말라고 만든 영화일 경우에도 너무 심하게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이야기를 펼쳐놓는다면, 결국 관객을 심란한 지경에 이르도록 만든다. 그러나 이 영화의 경우 지도를 둘러싸고 박창이, 박도원, 윤태구, 삼국파, 일본군에 독립군까지 각자의 이해관계는 아주 심각하지는 않지만 각 입장이 충분한 당위를 가지고 전개되며 생각을 깊게 하지 않아도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데 무리가 없고 이해도 쉽다. 언뜻 언뜻 엿보이다 마지막에 가서야 털어놓는 태구와 창이의 과거 원한 관계와 태구의 정체는 짐작 가능한 범위기는 해도 이야기의 긴장감을 쥐고 가는데 톡톡한 양념 역할을 한다. 별 거 아닌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영화에서 관객의 이성에 거슬리지 않으면서 생각을 요구하지 않는 스토리를 이렇게 솜씨좋게 부리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튀는 소리를 내지 않게 유머를 결합한 솜씨도 수준급이다. 이정도면 된거 아닌가?

이런 영화의 점수를 매기는 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을 비쥬얼과 캐릭터의 쾌감은 더할나위 없다. 제국열차를 세우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지도 탈취와 총격전 부터 서로 물고 물리고, 쫓고 쫓기는 액션과 만주벌판의 추격씬, 그리고 마지막 세 남자의 총격전까지 연출과 편집 모두 심장박동이 고조되는 박진감과 속도감을 자랑하며 그 비쥬얼 또한 훌륭하다. 게다가 그 추격씬의 속도감과 긴장감을 더해주는 음악은 또 왜이리 훌륭한가. 시끄럽게 울리는 말발굽 소리와 연신 터지는 총성 속에 뒤섞여 드러났다 사라졌다 하는 음악의 쿵쿵대는 울림은 귀로 느껴지는 쾌감을 배가 시킨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아름다운 것은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세 남자의 캐릭터다. 정우성, 이병헌, 송강호. 캐스팅 만으로도 화제만발이었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도 많았다. 정우성이 나온 영화는 대부분 티비로 만 보았다. 영화 스크린으로 그 기럭지와 자태를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막 서부 활극에서 빠져나온 듯한 비쥬얼을 자랑했다. 보영씨가 어디서 정우성이 묻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영화를 보고 와서 누가 정우성이 묻힌대! 라고 버럭 댔는데 거기에 나도 동참하고 싶다. 그는 서 있는 자태 하나 만으로 스크린을 평정한다. 모자 하나만 씌워놔도 화보라던 친구의 말이 가히 허언이 아니었다. 눈썹 위로 맵시 좋게 눌러쓴 모자와 부츠, 머플러와 등에 둘러맨 장총까지. 모두 완벽한 합으로 기가막히게 어울렸다. 처음 기차 안에서 코 위까지 올렸던 머플러를 내려 얼굴을 드러내던 장면과, 만주 벌판 에서 말 위에서 총을 돌리며 일본군을 처리하던 모습에 완전히 반했다.

이병헌은 내가 그동안 보아왔던 얼굴과는 다른, 다소 생경한 매력을 보여줬다. 성마르게 느껴질 만큼 바싹 마른 얼굴에 비열한 웃음을 흘리는 나쁜놈 박창이로 류승수의 손가락을 자르던 광기가 언뜻언뜻 드러나던 그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항상 부드럽고 분위기 있다고만 생각했던 특유의 그 낮고 나긋한 목소리가 그토록 음산하게 들릴 줄이야. 예고에서 보고도 반했지만 제국 열차 안에서 총을 뽑으며 달려가는 옆 모습이 무척이나 근사했다. 송강호는, 말 그대로 송강호였다. 전체 대사의 절반을 혼자 소화하는 듯한 떠벌이로 특유의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생활형 개그를 작렬하며 가장 먼저 이상한놈으로 송강호를 점찍었다는 감독의 말에 완전 공감을 표시하게 했다. 어항같이 생긴 요상한 투구를 뒤집어 쓰고 벌인 전투씬에서 그는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또 창이의 과거 속에 기억으로 남은 그 서늘한 표정도 좋았다. 영화 속 세 남자에 넋이 나가 들뜬 상태로 영화관을 빠져나오면서 뜬금없이 역시 남자는 30부터, 를 외쳤다. 아, 나도 또 보러 가고 싶다. 시끌시끌 했던 머리 속이 정말 텅 비고, 속이 시원해졌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이(J)
이전버튼 1 2 3 4 5 ... 31 이전버튼